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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글챌린지 러시아는 왜 성공한 개발 국가가 되지 못하는가?|

12년 전의 일입니다. 2011년, 유럽의 한국학 학회 (AKSE) 역사상 최초로 그 격년 학술 대회를 모스크바에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장소는 제가 한 때에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던 모스크바 국립대의 아시아 및 아프리카 연구부이었습니다. 그 연구부란 19세기의, 이미 많이 허름해진 건물이었습니다. 외면도 허름하지만, 그 안에서도 공간이 태부족했습니다. 한국이나 예컨대 중국의 대학마다 늘 보이는, 삐까뻔쩍하는 신축 건물이란 교정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차라리 더 많았습니다. 월급이 하도 박봉인지라 외국인 교원 역시 그다지 만나 볼 수 없었고, 한국에서 이미 흔해진 영문 학술지 같은 것도 발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학교의 이런 안타까운 사정을 목격하면서, 그 학회에 온 한국의 한 유명한 중진 연구자는 제게 물어봤습니다. 이미 중국보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후진화된 러시아에서는, 1989-91년에 중국과 달리 당-국가를 그대로 보존하지 못해 초고속 개발의 기회를 놓친 데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아쉬워하지 않느냐고, 라고 물어본 것이죠. 아마도 중국의 발전상을 본 뒤에 모스크바의 대학 세계를 보면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오게 돼 있었을 겁니다.

물론, 중국이 러시아의 시니어 (상위) 파트너가 된 지금에 와서는, 1989-91년의 선택의 기로에서 러시아가 당-국가 모델을 과감히 버린 데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러시아 안에서는 2011년보다 더 많죠. 이미 2011년에도 적지 않았지만요. 한데, 가령 러시아에서는 공산당 체제가 남았을 경우에도, 과연 러시아는 중국이나 그 전의 한국 내지 대만과 같은 "성공의 궤도"를 밟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어려웠으리라고 봅니다. 물론 동아시아 발전 국가들의 초고속 발전은, 공산당이나 한국과 같은, 고시 등으로 걸러지고 단련된, 자율성이 강한 관료 국가 시스템 등의 덕을 많이 본 것은 사살이고, 중국 공산당 관료나 한국의 관료 집단에 비해 고시가 아닌 정실, 인맥으로 선발되고 승진되는 러시아 관료들의 질이 형편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데, 동아시아의 초고속 발전을, 관료들만이 가져다준 게 아니었습니다. 이외에 3 가지 다른 요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그 어느 요인도 러시아에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 외자: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 투자된 외자의 누적 총액은 무려 1400억 달러 정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전세계 해외 투재 총액의 약 10%의 투자들이 중국을 향해 간 것이죠. 러시아로 1991년 이후에 흘러들어온 외자는 그 금액의 3분의 1에 불과한데다, 대부분은 매장 자원,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 등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러시아 GDP의 26%나 제조업에 해당되고 그 종사자의 총수도 약 1천1백만 명에 달하지만, 그 쪽의 가장 큰 기업들은 여전히 소련 시대 때부터 존재해온 AvtoVAZ (자가용), KAMAZ (트럭), Sukhoi (전투기), Russian Helicopters (헬기) 등입니다. 일부 신기술도 도입됐지만, 절반 이상의 생산 기계, 라인들은 소련 시대 때에 만들어진 것이죠. 제조업의 생산 총액 역시 여전히 소련의 마지막 해인 1991년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부 시장을 위한 수출용 생산을 하려고 대대적인 외국 투자가 들어오거나, 한국의 1960-80년대처럼 외국 경화 차관 등을 관치금융 시스템을 통해 재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다면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발전의 궤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죠. 그래서 공산당이 그 자리에 남았다면 러시아의 개발 속도는 중국을 따라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 임금: 초고속 개발이 한참이었던 1980년 그 당시, 한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약 미 120달러 정도이었습니다. 초고속 개발이 한참이었던 2000년 그 당시, 중국 노동자의 전국 평균 노임 역시 미 120불 정도로 집계됐습니다. 한데 같은 해에는 러시아에서는 숙련공의 평균 임금은 그것보다 약 40-50% 높았습니다. 저임금 노동이라는 게 마찬가지었지만, 중국만큼의 저임금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다 러시아에서는 고용주는 각종 사회 보험 (노후 연금 등)에 해당되는 세금을 부담해야 했지만,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는 초고속 개발 그 당시에는 전국민/인민적 사회 보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외자는 러시아에 들어가도 제조업보다 마진이 컸던 석유나 천연가스, 자원 채굴, 소매업 등으로 주로 들어간 것이죠.

  • 시장: 한국이나 중국은 애당초부터 수출 주도 개발을 지향했지만, 러시아 제조업 업자들에게는 수요의 수준이 비교적 높은 내수 시장이 있었습니다. 자가용이나 트럭, 철도차량, 헬기, 여객기 등 러시아의 전통적 제조업은, 일차적으로 러시아나 구소련의 시장 수요에 맞추어져 있으며, 무기 생산 이외에는 구소련 국경 밖에서의 경쟁 경험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공업의 내수 지향적 구조는 19세기 이후부터 굳어져 온것으로,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수출 지향으로 짧은 시간 내에 바꾸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1989-91년 때의 선택과 무관하게, 아마도 러시아는 중국의 초고속 개발을 어차피 따라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러시아의 차후 개발의 방향은, 수출 주도와 정반대의 방향, 즉 국가의 투자, 국영 기업 주도, 무기 생산과 내수 주도, 수출 대체 위주로 정해진 것입니다. 앞으로 러시아 개발의 목표는,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세계의 공장"이라기보다는 기계 등에 대한 가급적인 자급자족의 달성, 그리고 일차적으로 무기 산업의 선진화 등일 겁니다. 이와 같은 제조업의 발전 궤도는, 또 역으로 생산될 무기를 사용할 '전쟁'의 가능성을 보다 많이 열어줄 것이죠. 앞으로 수십년간 러시아는 그다지 평화로운 상태가 아닐 것이라고, 유감스럽게도 내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223081892688

 

댓글 1

사요리 2023.04.22. 13:17
요약) 소련때도 '로켓 쏘는 오트볼타'였는데 지금이라고 '눈 내리는 나이지리아'에서 탈출할 수 있을거같음? 어림도 없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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