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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글챌린지 동원 국가의 운명? - 박노자

열강 각축의 새로운 "시즌"을 연 러-우 전쟁은, 이제 심화의 국면을 맞이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침략자인 러시아 쪽에서도 이제 "동원령"을 내린 것입니다. 말은 "부분 동원"이지만, 사실 그 "부분"의 한계선이 어디인지 명령을 내린 자만이 알 일입니다. "부분"은 어디까지나 기만적인 수식어이며 동원은 동원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병력의 규모는, 전투 중의 병력만 보면 약 70만 명이며 전체 동원된 병력은 거의 100만 명에 가깝답니다. 일단 영토 "잠식"을 계속하자면 러시아의 전투 병력은 이상적으로 3배, 적어도 2배 정도로 우크라이나의 전투 병력보다 많아야 합니다. 그러니 러시아 국방 장관의 말대로 러시아의 "잠재적 동원 자원" (동원 가능한 예비역 병력 숫자)이 2천500만 명이라면, 그들 중에서는 궁극적으로 적이도 5-10%나 전장으로 끌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와 같은 규모의 병력을 훈련시키고 장비 등 갖추는 데에는 적어도 3-6개월이 소요됩니다. 즉, 지금 예상할 수 있는 전쟁의 기간은 그것보다 훨씬 더 길 것으로 봐야 할 듯하여, 내년에 접어들어도 전투의 끝이 안보일 것이 아닌가, 라는 심각한 우려가 생기게 돼 있습니다. 이제 두 개의 "동원 국가" 사이의 전쟁은, 총동원 상태가 된 징병제 국가인 남북한이 싸운 한국 전쟁을 보다 더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총)동원, 즉 국가의 "비상 상태"는 근대 국가로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총)동원을 가동시킨 국가는, 수년간 소모적인 전쟁 끝에 전통적인 의미의 군사적 "패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바로 1945년의 제국 일본인데, 그 때 그 패배의 한 가지 배경이 바로 독일과 일본이 아닌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개발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이와 같은 전례는 아마도 주요 핵 보유국인 러시아에 해당되지 않을 겁니다. 또 한 가지 가능한 결과는 전형적인 총동원 국가인 제국 독일이 1918년에 맞이한 것이죠. 군사적으로 독일은 오히려 비교적 선전을 해서, 그 군은 프랑스 밑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영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소모전 끝에 불만이 쌓이고 쌓였던 사회는 드디어 "내파"되고, 독일 혁명의 매개체가 된 것은 바로 전쟁 기간에도 계속 그 존재를 유지했던, 그리고 상당한 내부적 독립성과 동원 능력이 있었던 사민당이었습니다. 그런 정당은 오늘날 러시아에는 없습니다 (연방 공산당은 푸틴 체제로부터 전혀 독립적이지 않죠). 그 전 해인 1917년2월에 러시아 제국도 내파했는데, 거기에서는 수도 무산 계급의 반란을 제도화시킨 것은 역시 상대적 독립성을 유지했던 국회 (두마)이었습니다. 이런 국회 역시 오늘날 러시아에는 없지요 (러시아 국회는 정부가 내리는 지령대로 법률을 찍어주는 "기계"에 가깝습니다).

총동원으로 이기고 그 생명력을 증강시킨 국가의 대표적 사례는 스탈린의 소련입니다. 소련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여러 모로 매우 흡사한) 핀란드 침공이 개시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사실상의 동원 상태에 있었으며, 결국 2천8백만 명의 상상을 초월하는 인적 손실을 감수했지만, "국가 생존"과 "영토 확장" 등에 성공했습니다. 그 성공은 종전 이후 40여년 간의 소비에트 체제의 "연장"을 가능케 하고, 그 체제에 전반적인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적어도 소련의 공민 입장에서 말입니다. 물론 히틀러와 함께 폴란드 등을 분해시킨 뒤에 히틀러로부터 침략을 당한 스탈린의 입장과, 오늘날 우크라이나 침략하고 있는 푸틴의 입장을 단순 비교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상황"은 여러 모로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죠. 흡사한 것 하나 있다면 이는 전쟁 동원의 내재적인 "논리"입니다. 동원이란 모든 자원에 대한 국가 장악력의 극대화, 군수공업에의 중점, 외부 정보로부터의 차단, 주민 이동의 제한 등을 의미하는데, 세계에서 "국가"가 가장 절대화된 소련 체제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금 푸틴 체제도 대체로 이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산 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는 아직도 법적으로 인정되지만, 군수 물자 조달 실패에 대한 형법상의 책임 등의 법적 조항이 신설돼 사실상 "전시 동원 경제"로의 이행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군수 공장들이 3교대 체제로 운영되는 것은 1939-45년간과 똑같고요.

푸틴의 동원은 "도박"입니다. 동원해서 수년 동안 다수의 피동원자들에게 납득될 만한 모종의 "성공"이 없다면, 아마도 정권 차원에서 독재자의 인적 교체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 정도의 치명타를 입어 푸틴이 계속 정치적으로 생존하기가 힘들 겁니다. 그런 납득할 만한 "성과"가 입증된다면 (예컨대 우크라이나 영토의 절반 내지 상당부분이 획득된다면) 푸틴이 후임자를 임명해 그 정권을 계속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 정권의 생명력은 아마도 수십년으로 연장될 겁니다. 이외에는 정권의 성격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태까지는 푸틴 정권은 대중을 원자화시켜 "탈동원" (demobilized) 된 상태로 두고 있었지만, 동원 전쟁 이후의 대중을 계속 이념, 정치적으로 동원해야 할 겁니다. 아마도 그 동원에 사용될 이념이란 극우적인 국가주의적 색채의 민족주의일 겁니다. 그러니 한국사로 치면 일제말기의 총동원 이데올로기가 "영구화"되는 셈이 될 거죠. 그리고 동원 전쟁 과정에서 정권과 대중이 "공범" 관계에 들어간 이상, 정권이 대중들과 사회적 잉여를 나누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 돼 아마도 국가적인 재분배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보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 마디로, 분배 메커니즘까지 돼 있는 동원형 극우 국가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오랫동안 지속될 셈이 될 겁니다.

푸틴이 패배를 맞이해 혁명에 의해서 제거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입니다. 문제는, 패배의 여부를 차지하더라도 그런 "혁명"을 일으킬 조직력을 지금 러시아의 좌파가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산발적인 반란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만, 당분간 "혁명"을 기대하기가 아쉽게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극단적인 극우 정권 치하에서 러시아 좌파가 앞으로 그 조직의 힘을 얼마나 키울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극우적 국가주의에 맞설 수 있는 좌파적인 "대안적 미래"에 대한 담론을 얼마나 제대로 구축, 유포할 것인지 관건입니다. 여태까지 푸틴 정권 22년간 러시아 좌파의 활동은 사실 매우 미약했죠. 과연 우크라이나 침략 현장에서의 시쳇더미를 본 러시아인들은, 궁극적으로 다시 왼쪽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요?

 

 

출처 : 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222882707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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