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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조선일보 종군기자가 전하는 자유평양의 최후[발롱도르~]

501203대동강교.png.jpg

1950년 12월 3일 피난가기 위하여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북한의 피난민들. 이들은 폭파된 다리의 잔해를 발판삼아 이 추운 겨울,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12월 5일, 평양은 물자집적소를 파괴하는 유엔군 전투기로 인하여 흑연속에 있었다. '크리스마스 공세'의 실패로 큰 타격을 입은 유엔군은 평양을 포기하고 후퇴하였고, 45년 이래 5년간의 공산통치를 격은 이북의 주민들은 공산당이 돌아온다는 말에 남부여대하고 집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피난길을 나갔다. 그러나 그들 앞에 대동강이 이 행렬을 막았다. 심지어 대동강 철교는 폭파된지 오래. 이들은 대동강 철교의 찬해를 발판삼아 오사하는 유엔공군기의 탄우를 뚫고 일로 남으로 내려갔다. 이같은 광경을 국군의 북진을 취재하던 조선일보의 전동천 기자가 쓴 르포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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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엄으로찾는자유

도강못한 시민은 해로로 피난

평양최후의 날

【본사특파원 전동천기(全東天記)】 12월 5일 유·엔군및 국군의 전략적 철수로 적의 손에 떠러지기 직전의 최후의평양은 폭음과 화염 그리고 충천하는 혹연 속에서 도강하여 남하하려는 시민들의 아우성으로 뒤덮여있었다 일반시민에 대한 피난권고는 12월 3일에 내려저서 대부분의 시민은 4일까지 피난을 하였으나 4일 저녁 대동강의 가교가 최후 철수부대의 손으로 끊키운 다음에도 이 가교로 모혀도는 남하 피난민의 수는 무수하였는바 그들은 파괴된 가교를 드람통과 부서진 가교의 목편 등으로 얼거매가지고 건느는 것이였다

이렇게 피난민들이 건느는 등안 하오 삼시가 되자 유·엔군 전투기들은 모란봉 근처의 중공군 께리라 부대를 기총소사한다음 도강하는 시민들을 중공군 께리라부대로 오인하고 다시 기관총을 내려부어서 도강 중도에 쓰러지는 시민도 있었으나 쓰러자는 사람의 시체를 넘으면서도 도강하는 시민들의 광경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등을 이들 평양시민들이 즉엄으로써 찻는 광경이기도 하였고 괴뢰 집단의 행악이 그들 에게 얼마나 심독하였었는가를 실증하는 광경이기도 하였다

전투기들은 게속하여 시내의 군사시설 비행장동을 폭격하여 피난민들이 사동 근방의 언덕에 올랏을때는 맹렬한 화염이 평양을 뒤덮었는데 때마츰 저녁노을이 화염에 반사하여 그 처절한 평양의 최후는 평양을 떠나는 시민들의 발을 엿번아고 멈추게하고 눈물을 뿌리하였다 허나 이렇게 평양을 바라보며 눈물 뿌리는시민들도 국군과 유·엔군의 최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것은 지극히 마음 든든한 점이었다

대동강의 가교가 끊길 때까지 강을 건느지 못한 퍼난민들은 강서 용강쪽으로 흘러내려갔는데 그들이 대부분은 진남포 광량만을 경유해서 해로로 인천에 상륙할 것을 히망하고있었다

평양에서 남쪽으로 사십리 떠러진 중화에서부터 신막에 이르는 삼백리길의 연도는 약 오십만으로 추측되는피난민으로 덮여있었는데 이들 일렬종대의 피난민의 대군은 하루 육십리 내지 칠십리의 평균 속도로 남하하고있었으며 이피난민의수는 그들이 한마을 한시정을 지날수록 늘어만가고 있었다 그둘의 이동속도로 추축하여 오는 15일이면 그 선두부대는 서울에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바 불에 뒤덮인 자기집을 돌보지 않고 최후의 평양에서 죽엄으로써 대한민국을 찻어 남하하는 그들의 피난행렬은 정의의 승리를 시위하는 인민의 행렬 같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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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전투기들이 남하하는 피난민들을 적으로 오해해서 기총을 쏘아 피난민들이 쓰려지는 게 참... 아마 평양 시내의 물자를 파괴하던 도중 이 피난민들을 중공군 부대로 오인하고 사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됬든 대동강을 넘는 이 피난민들을 끝으로 자유평양은 그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10월 19일 국군 제1보병사단의 입성으로 공산압제에서 해방된지 49일만에 평양은 다시 공산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지금까지 평양은 간악한 독재정권의 폭압적 탄압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전동천.png.jpg

정주 출신의 전동천 기자

 

p.s. 평북 정주 출신인 전동천씨는 해방 이후 평양의 민간신문인 평양민보사 기자로 일하다 1947년 38선을 넘었고 이후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습니다. 6·25 때는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취재하였고 1952년 9월 수도고지 탈환 전투에서 부상을 입기도 하였습니다. 12월 1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위 기사는 제1차 교육과정(1954~1963) 중학교 2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p.s. 진남포 부근으로 철수한 피난민들은 일부는 유엔 함선의 도움으로 남하하였고 일부는 어선 등을 이용하여 황해도로 내려갔는데, 이들 중 일부는 51년에 대한민국 해군이 진행한 황해도 피난민 철수작전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나머지는 어선을 통하여 옹진,해주-백령도-강화도,인천 등등 의 코스로 넘어오게 되는데, 전국노래자랑으로 유명한 송해 선생님도 이러한 코스를 이용한 피난민 중 하나입니다.

 

출처

조선일보 1950년 12월 13일자

댓글 8

best 서초무선국 작성자 2021.05.30. 23:04
바빠서 글 못쓰다가 오랫만에 쓰네유...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
best 서초무선국 작성자 2021.05.30. 23:04
바빠서 글 못쓰다가 오랫만에 쓰네유...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
댓글
블루스 2021.05.30. 23:19
 서초무선국
좋은 글 감사해용
댓글
애플체리드링크 2021.05.31. 10:29
이런 글 보면 흥남 부두 철수가 참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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