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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조지 워싱턴이 대륙의회 의장에게 전한 트렌턴전투 보고서신[발롱도르~]

 

Washington_Crossing_the_Delaware_by_Emanuel_Leutze,_MMA-NYC,_1851.jpg

-엠마뉴엘 로이체 작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 1851

12월 26일 자정,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 장군은 휘하의 전병력을 이끌고 영국군 예하 헤센 군이 주둔하고 있는 트렌턴으로 진격했습니다. 5천명도 안되는 휘하 병력들 중 대다수는 계약기간이 그해 12월 31일까지고 그럼 다음해 정월 초일부터 병력이 절반이상 줄어들어 전쟁이 패한 것과 다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추가복무계약을 맺게 하고자 기적이 필요한데, 영국군에 고용된 헤센 용병들이 대륙군 주둔지 근처의 자근마을 트렌턴에 주둔하고 있던 것을 알아낸 조지 워싱턴은 그들을 습격해서 승전보를 올리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자 합니다. 이에 3개로 나뉘어진 그의 군대는 델라웨어 강변에 있는 뉴저지의 주도, 트렌턴을 포위하는 전략을 바탕으로 트렌턴의 북쪽과 남쪽 2곳에서 델라웨어 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하고 트렌턴 시를 포위하려고 했으나 남쪽의 두 부대는 얼음이 너무 많아 도하 자체를 못하거나, 포를 운반하지 못해 다시 강을 되돌아갔고,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본대만 간신히 도하했습니다. 당시 날씨는 가혹했고 병사들 다수는 신발조차 없어서 헝겊을 발에 둘러쌀정도로 보급도 열악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지 워싱턴은 휘하 부대와 트렌턴으로 진격했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아래는 당시 조지 워싱턴이 대륙의회 의장 존 핸콕에게 보낸 트렌턴 전투에 관련된 보고 서한 번역본입니다.

==========

사령부. 뉴타운, 1976년 12월 27일

각하

저는 어제 아침에 행하여진, 트랜톤에 위치하였던 적 파견대에 대하여 제가 행한 모험의 성공에 대하여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25일 저녁에 저는 병사들에, 자정까지 필요한 대포와 함께 모두를 건널 수 있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우리가 아침 5시까지 9마일 거리에 위치한 트랜턴에 쉽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여, 맥콘키 나루터를 건너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얼음의 양이 선박의 통행을 제한시킴에 따라 오전 3시가 되서야 대포가 전부 도하할 수 있었고 4시 즈음에야 병사들이 행군대형을 갖출 수 있었다.

저는 날이 개이기 전에 도착할 수 없음을 잘 알았고, 이는 마을을 습격하는 것을 체념케 하였으나, 발견되지 않고 후퇴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모든 일을 각오하고 계속 진행키로 하였습니다. 저는 제 부대를 2개로 나눠 하나는 아래 혹은 강변 도로로, 다른 부대는 위 혹은 페닝턴 도로로 행군할 것을 명했습니다. 각 부대는 행군해야 할 거리가 비슷했으므로, 저는 각 부대에게, 경계병들을 몰아내자마자, 적들이 대열을 갖추기 전에 적에게 돌격할 수도 있으므로, 마을로 곧바로 들어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윗쪽의 부대는 적군의 전진초소에 정확히 08시 정각에 도착하였으며, 3분 후, 저는 아랬쪽 도로에 피워진 불을 통하여, 그 부대 또한 도착하였음을 알았습니다. 마을 외곽의 경계병들은 큰 저항은 못했으나, 숫자에 비하면, 그들은 우수히 행동하였으며, 후퇴하면서도 가옥들 뒤에서 계속적으로 사격을 가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본대가 형성되는 것을 보았으나, 그들의 동작에서, 그들은 어찌 행동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들 포의 일부를 벌써 탈취한 우리 병력들의 강한 압력을 받은 그들은 그들 우측에 위치한, 트린스턴으로 가는 도로를 이용하여 후퇴하려 했으나, 그들의 의도를 이해한 저는 병력 일부를 그 방면에 투입하였으며 이 전력은 곧바로 적을 견제했읍니다. 우리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포위되었으며, 계속 저항할 시 조각날 것을 확신한 그들은, 무기를 내려놓는데 동의하였습니다. 항복한 숫자는 장교 23명과 병사 996명입니다. 지휘관인 랄 대령과 7명은 마을에서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얼마나 전사했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그들이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 숫자를 2~30명 이상으로 추정하지 않습니다. 아측 피해는 매우 사소하며, 오직 장교 2명과 이병 2명만이 부상당했습니다.

저는 적 부대는 1500명으로 구성된 랜스패치, 크닙하우센, 롤의 헤센 연대 3개와 영국 경기병 일부로 이뤄졌으며, 공격이 시작된 이후, 죽거나 포로되지 않은 이들 모두가 곧바로 볼덴타운으로 가는 도로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제 계획이 완전히 실행될 수 있었으면, 이들 또한 우리 손에 잡혔을 것이 명확합니다. 에윙 장군은 전날 트렌턴 나루를 건너 마을 밖으로 통하는 다리를 점령했어야 했으나, 강에 떠다니는 얼음의 양이 너무 많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캐드왈라더 장군 또한 이러한 이유로 도하에 어려움을 겪게 했으며, 비록 그는 비록 브리스톨에서 온 펜실베니아 민병대의 일부와 함께 도하했으나 대포를 도하 못시키는 것을 알자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만약 에윙 장군과 캐드왈라더 장군 휘하의 병사들이 강을 건넜으면, 그들의 도움 하에 트렌턴 이남의 모든 초소에서 저들을 몰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진 휘하 병력들과 그들의 병럭수, 그리고 제 위치 윗쪽에 있는 프린스턴에 위치한 강력한 경보병 1개 대대를 신중히 생각했을때, 저희가 노획한 대포와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을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비축품을 찾지 못했읍니다.

저는 또한, 장교들과 병사들이, 이번 건에서의 그들의 태도가, 그들의 가장 높은 명예를 보여준다고 덛붙입니다. 매우 험난한 밤에 강을 건너는 것의 어려움, 그리고 난폭한 폭설과 우박의 폭풍를 뚫고 행군하는 것도, 그들의 열정을 조금이라도 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돌격할 차례가 오자, 모두 각자 전진할 때 서로가 다투며 전진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고, 특정 부대에 공을 돌리자면, 다른 부대에 대단히 부당할 것이 자명합니다.

저의 제1 부관인 베일러 대령이 본 서신을 귀하께 전달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의 활발한 품행과 태도는 저로 하여금 그를 각하께 보고차 보내게 되었습니다.

존경과 함께, 각하의 충실한 하인이

조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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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국 National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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