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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유일한 한강방어선전투 현장르포.ap[발롱도르~]

한강선방어.jpg

- 한강 남안의 방파제를 진지삼아 도하를 시도하는 적을 막는 국군 혼성제7사단 혼성공병대대 장병들.

 

 우리나라 언론이 거의 완전히 멈춰선 적이 딱 두번 있습니다. 일제 말기와 6.25전쟁 초기이입니다. 특히 6.25전쟁 첫 3개월동안 첫 3일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중앙언론계(당시 조선,동아,경향,서울,자유신문 등이 있었음)는 완전 마비상태에 빠져듭니다. 사옥과 인쇄기를 적에게 빼앗긴 상태에서 맨몸으로 서울에서 간신히 빠져나간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실질적으로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25 초기의 전선 보도를 보려면 보통 해외 언론사 아카이브에 가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특파원을 보낸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 언론인 특성상 이들은 보통 미군 사령부나 미군이 담당하는 전선을 주로 취재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전쟁 초기 국군을 보도한 전선르포는 찾기 힘들었는데...

 찾았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 기사입니다. 무려 한강 방어선전투에 관한 르포! 전쟁 발발 5일만에 쓰여진 매우 귀한 기사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파견된 AP통신의 톰 램버트 기자가 한강방어선의 중심부를 지키던 혼성제7사단 사령부에 찾아간 이야기 입니다. 아래에 제가 번역한 본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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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포가 '해방'된 서울을 흽쓸다 - 인민재판

[서울에 인민재판소의 설치-공산'해방'지역들이 최초로 맛보는 공포-와 어제 밤 동안 전 한강선을 지켜낸 남한군의 절망감이 어제 항공편으로 도쿄에 지연 도착한 이 특보에 보도되어 있다.]

서울 외곽의 한강방어선에서 톰 램버트 기자 6월 29일 [지연] -AP-

빈약하게 무장되고 극심한 공격에 시달린 남한군은 오늘 밤 두 걱정거리가 있다 - 러시아제 탱크와 서울에서 열리는 적색 인민재판이다.

그들은 탱크를 막아낼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들 대다수의 -특히 장교들- 가족들이 공산군에 점령된 도시에 남아있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의 인민재판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카고 북 워시태나우로 5908번지 출신 줄리우스 스콜러 대위와 나는 이 지역에 배치된 제7사단의 유재흥 소장 사령부에 찾아갔다.

다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보다

일본 육사를 졸업한 29살의 유 장군은 사령부를 병원의 치과 사무실에 차렸다. 그곳에는 아직 의자, 드릴, 조명과 의약품들이 있었다.

키가 작지만 다부진 체형의 유재흥은 지도 위에서 적의 위치를 짚으며 남한군이 아직 김포와 서울비행장을 지키고 있지만 상황은 확실히 위험하다고 했다.[두 곳 모두 나중에 함락되었다.]

나중에 우리는 서울과 다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잘 보이는 초소로 갔다.

도시에서 화염이 치솟다

우리가 있는 전초 바로 반대편에는 서울이 위치해 있었다. 서쪽으로 김포까지 쭈욱 이어진, 공산군이 차지한 한강 북안에서는 검은 석유연기가 거대한 화염으로부터 일어났다. 스콜러 대위는 이 불이 구 주한미군사고문단 수송부에서 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에 아내와 두 자녀가 남아있는 유 장군은 최근 2일 간 한강을 건넌 한국인들이 그에게 공산 침략자들이 벌써 '인민재판'을 시작했다고 알렸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 재판은 남한군 장교, 경찰, 고위직 공무원, 그리고 정부 지지자들에게 '우선권'이 부여됐다고 밝혔다.

적에게 장비를 잃다

그는 남한군이 거의 모든 포와 많은 장비를 적에게 잃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는 또 9만명 정도 되는 남한군의 4분의 3 정도가 지금 한강 이남에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주한 미군사고문단 장교들이 남한군의 40퍼센트 정도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거나 강북에 고립되어 있다고 추정한 것 보다 높은 수치이다.

우리는 유장군의 참모장교, 이용규 대령에게 현재 상태로 조직되고 무장된 국군이 과연 서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물었다.

너무 늦었다고 말한 그는 한숨만 내쉬었다.

미군을 원하다

우리는 이 대령에게 과연 미군이 참전할까에 대해서 물었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제발 우리 병사들에게 보여줄 한개 소대라도 보내주세요. 바닥에 떨어져있던 우리 병사들 사기가[그는 자기 손을 바닥으로 덜어뜨렸다.] 확 위로 치솟을 것입니다[그는 자기 손을 위로 확 올렸다]." 하지만 남한군이 반격을 하기 전에 우선 공군, 전차, 중포병 그리고 공병대가 조직되어야 한다고 유 장군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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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방어선을 유일하게 방어한 이 르포를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게, 사단장휘하의 사단이 포병도 없고 공병도 없고 전차도 없으니 실질적으로 일선부대를 도울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수습한 병사들을 일선으로 보내고 명령을 전달하는 것 빼고는 할수 없으니... 거기에 가족들은 서울에 고립되어 있고 언제 인민재판으로 처형될 지도 모르니(다행히도 유재흥 장군의 가족들은 무사했다고 합니다) 사단장 처지가 참 처량해 보입니다. 사단장도 이러한 궁핍한 처지인데 일선에서 제대로 된 지원과 보급도 없이 방파제를 벽 삼아 쏟아지는 적 포탄에 맞섰을 장병들을 생각하면... 그 용기와 희생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P.S. 위의 기사를 보면 '제7사단 사령부'가 어느 병원의 치과 사무실에 있다고 했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유재흥 장군이 28일 07시 폭파안된 한강철교 구간을 건너 노량진역사에 임시 사령부를 설치해 병력을 수습하다가 15시 경에 대방동에 위치한 수도육군병원에 사령부를 설치했다고 나옵니다(군사편찬연구소 <한국전쟁>3권 117pg). 톰 램버트 기자가 한강방어선을 찾아 간 것이 '밤 동안 한강선을 전부 지킨' 이후일테니 빨라도 29일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램버트 기자가 찾아갔을 당시에는 수도육군병원에 7사단 사령부가 있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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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카고 트리뷴 아카이브 - Chicago Tribune Archive

군사편찬연구소 <한국전쟁> 제3권 (한강방어선전투와 미군의 참전) 117 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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