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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대서양 상공의 폭탄테러,에어인디아 182편 폭파사건[발롱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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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 23일,대서양 31,000피트 상공

대형 보잉 747-237B 한대가 하늘위를 날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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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공기의 정체는 바로 329명이 탑승한 에어인디아 182편으로,몬트리올 미라벨 국제공항을 출발해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을 거쳐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까지 가는 항공편이었다.

기장은 한세 나렌드라,부기장은 사트윈더 비힌더,항공기관사는 다라 둠마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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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시 18분,182편은 히드로 국제공항으로 가기위해 몬트리올에서 이륙했다.

이날 182편은 특이하게도 엔진이 5개가 달려있었는데,그 이유는 182편의 직전 비행에서 엔진 하나가 고장나버렸기 때문이었다.

몬트리올에는 정비인력이 부족해서 엔진수리가 힘들었기 때문에 에어인디아는 고장난 엔진을 멀쩡한 엔진으로 교체한 후,그 고장난 엔진을 다시 182편 왼날개 안쪽에 장착해서 봄베이까지 고장난 엔진을 옮기고 봄베이에 도착하는순간 바로 수리하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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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이날 5개의 엔진이 달렸던 182편은 이륙후 5번째 엔진때문에 평상시 고도보다 약간 낮게 비행할수밖에 없었고,결국 예정보다 2,000피트 낮은 고도인 31,000피트에서 비행할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182편은 대서양을 건너 아일랜드 남부 해안을 비행할때까지는 별탈없이 순항했고,이대로 런던까지 갈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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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오전 7시 14분이 되자 관제탑 레이더에서 182편이 갑자기 사라졌다!

당황한 관제탑은 계속 182편과 통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결국 실종 15~30분쯤후 관제탑은 해양구조대와 실종지역 인근 선박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곧바로 구조대와 선박들은 수색에 들어갔고 1시간 30분쯤후인 오전 9시 13분,한 선박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182편의 잔해였다.

182편은 대서양 바다속에 추락해버리고 만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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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즉시 구조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생존자는 없었고,시체와 잔해들만이 구조대를 맞이했다.

구조대는 침통한 마음으로 26일까지 시신수습작업을 했다.

300명 이상이 죽은 대참사에 인도 전역이 술렁였고,즉시 조사단이 수립되어 블랙박스 수색에 나섰다.

다행히 블랙박스는 무사히 인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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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의 인양으로 조사단은 빠른시일안에 사고원인이 규명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지만,곧 그 희망은 부서졌다.

블랙박스의 음성기록장치와 비행기록장치에서는 조종사들이 추락 직전까지 별탈없이 조종을 하고있었다는 기록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다만 음성기록장치의 마지막 1초 부분에서 폭음이 들렸다는 것만이 유인한 단서였다.

그런데,폭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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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은 곧바로 182편이 폭탄테러로 추락했을수 있겠다 판단하고는 수거한 182편의 잔해를 조사하기 시작했고,그와 동시에 182편 승객 명단과 사고직전 182편의 탑승수속과 수화물 운송을 도왔던 직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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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182편이 폭탄테러를 당했음을 확신하게하는 증거들이 나왔다.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1.사고당일 오전 8시,'싱'이라는 182편 대기자 명단에 있는 남자가 탑승수속중 강제로 직원에게 182편에 갈색가방을 싣게 했는데,정작 이사람은 182편에 타지 않았다.

2.182편이 사고전에 토론토에 있을때 수화물 검사가 이루어졌는데,(그때당시의 182편은 181편이었음)이때 수하물중 하나에서 폭발물감지기 경보가 울렸다.

하지만,당시 수화물을 검사하던 직원은 경보음이 다르다고 경보를 무시했다.

3.182편의 잔해를 재조립한 결과,182편은 순항중 갑자기 공중분해된것으로 나타났다.

4.182편 실종과 비슷한시각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도 폭탄테러가 일어났는데(이로인해 6명이 사상),이때 폭발한 수하물을 실을예정이던 항공기도 에어인디아 항공 소속이었고,결정적으로 그 항공편의 승객 명단에도 '싱'이 있었다.

이에 조사단은 182편이 폭탄테러로 공중분해되었고,이 폭탄테러를 저지른 범인은 나리타 폭탄테러범과 같은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나리타에서 발견된 폭탄이 밴쿠버산 산요 라디오의 개조품이였다는것이 밝혀지자 경찰을 동원해 밴쿠버에서 산요 라디오를 산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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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조사 끝에,캐나다 경찰은 인도인 시크교도 '인더르지트 싱 르얏'이 산요 라디오를 샀던것을 밝혀냈다.

캐나다 경찰은 곧바로 그의 자택을 기습했고,산요 라디오의 운송장과 폭약 등을 발견했다.

182편을 폭파한 사람은 바로 르얏이었던 것이다.

르얏은 심문끝에 자기와 자기가 가입한 조직인 '바바르 칼사'가 범인이라고 자백했고,182편을 폭파시킨 이유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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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르 칼사의 조직원들

 

사실,르얏은 처음부터 182편을 폭파시킬 마음은 없었다.

바바르 칼사도 처음에는 비폭력 단체였고,그저 힌두교도들의 탄압을 피해 시크교도 국가인 칼리스탄을 건설하려는 단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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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테러(글과는 무관합니다)

 

하지만,1978년부터 르얏과 바바르 칼사의 활동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978년 4월,인도 바이사크 지역의 축제에서 종파간 유혈충돌이 일어나 시크교도 13명이 살해당했고,다수의 시크교도가 캐나다로 망명오게 되었다.

같은 동포가 살해당하고 도망치는것을 본 바바르 칼사는 복수심에 몸부림쳤고,점점 무장단체화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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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라 간디

 

이렇게 점점 무장단체화 되던 바바르 칼사는 또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인도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네루의 딸,재임기간동안 인도의 빈곤을 해소시켰으나 권력에 집착해 종교적 갈등을 부추겼고 민주주의자들을 탄압했다)가 시크교도를 잔인하게 탄압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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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도의 성지,황금사원

 

1984년들어 시크교도들의 독립시위가 거세지자,인디라 간디는 시크교도 성지인 황금사원을 군대로 깔아뭉게서 본보기를 보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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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각료와 시크교도 군인들이 결사반대했으나,인디라 간디는 결국 84년 6월 3일에 황금사원 점령작전인 '푸른 별 작전'을 강행했고 전차와 야포까지 동원한 끝에 6월 8일,황금사원을 점령했다.

하지만 군인들은 민간인들과 시크교도 독립주의자들을 가리지 않고 학살했고,그 결과 수백~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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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시크교도들은 동포들이 학살당한것과 인도군이 자기들의 성지를 공격해 무너뜨렸다는것에 대해 분노했고,결국 시크교도 호위병 둘이 10월 31일에 인디라 간디를 암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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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디라 간디의 암살소식을 들은 인도 힌두교도들은 시크교도들에게 사과는 못할망정 반시크교 폭동을 일으켰고,그결과 또 1,000~2,000명의 시크교도가 학살당했다.

 

이미 무장단체화 되고있던 바바르 칼사는 이 사태로 인해 결국 반힌두교 테러무장단체가 되었고,인도 항공기를 폭파시켜 힌두교도들에게 복수하자고 결의했다.

때마침 박해를 피해 캐나다에 망명한 르얏이 캐나다 폭탄 제조업자와 만나게 되었고,곧바로 르얏과 조직원들은 폭탄 제조업자와 폭약전문가들에게 사제폭탄 제조법과 사용법을 배웠다.

이들은 1985년 5월쯤이 되면 자기들이 제작한 폭탄으로 폭파실험을 할정도로 빠르게 기술을 습득했고 결국 6월에 라디오 폭탄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곧바로 이들은 인도항공 182편과 301편의 티켓을 구매했고,항공기를 폭파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운명의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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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르 칼사가 목표로 한 인도항공 301편은 시간조작 실수로 폭탄이 공항에서 먼저 폭발하는 바람에 폭파에 실패했지만,또다른 목표였던 182편은 안타깝게도 폭탄이 문제없이 실려버렸다.

그 결과,아일랜드 인근 대서양 상공에서 폭탄이 기폭했고,그 결과 182편은 수만피트 상공 위에서 공중분해되고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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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얏의 자백을 들은 캐나다 경찰은 바로 182편에 폭탄가방을 실은 사람을 추적했으나,결국 잡지 못했다.

르얏은 과실치사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0+5년형을 선고받았지만,바바르 칼사의 다른 조직원들은 구금중 의문사한 파미르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르얏도 현재 풀려난 상태다.

한편,인도정부와 힌두교도는 이사건을 구실로 또 시크교도들을 학살하려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물러나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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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후,수하물 검색규정이 강화되었고 항공기 탑승자가 항공기에 타고 있어야만 그 탑승자의 수화물을 실을수 있단 규정이 만들어졌다.

토론토와 아일랜드,밴쿠버에는 182편 폭탄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설치되었다.

 

 

 

182편 사건으로 희생된 329명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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