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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광복에 대한 한 견해입니다.[발롱도르~]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 선언 방송을 하며 조선은 식민지 ‘해방’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환호했고, 그날 밤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신국가건설운동이 이루어졌다고 이해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항복 선언 이후에도 북에서는 소련군과 일본군이 대치중이었고, 남조선에는 일본의 식민통치체제가 엄존해있었다.

 

일부 말단 지역에서의 통치기구는 와해되었지만 주요도시로 일본군경이 집중되었고 한국인의 경비를 담당했다.

 

일본군은 방송국, 신문사 등 주요시설을 경비하고 종로 네거리, 광화문 등 주요 가도를 경비하였다.

 

이후 9월 2일 일본제국은 정식항복을 하였고, 9월 9일 조선총독부가 정식 항복하였고, 일본제국의 정식적인 해체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확인되었다.

 

그렇기에 기존의 8.15 해방은 착시라고 볼 수 있다.

 

해방 선언 직후에도 일본의 억압적인 통치가 계속되자 조선인은 불안한 심리와 함께 현실적 무기력을 느꼈다.

 

북조선에서는 소련군이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고 해방을 이루자 당시 조선인들은 해방군으로서 미군을 기다렸다.  

 

당시 일반대중에게 일본의 패전과 항복은 상상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천황 방송에서 “미·영·소·중 4국의 공동선언”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천황의 방송이 일본군의 항복과 패전을 의미하더라도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발악이 두렵고, 또한 그렇게 막강하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제압한 미국과 소련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강력한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즉, 당시 대중적 수준에서의 8월 15일 해방은 생각도, 대비도 못한 갑작스러운 해방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일부 가져왔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댓글 7

천사시체 2019.08.12. 17:26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하긴 했지만 조선독립군이 당시 연합군에 정식으로 합류도 못한 상황에서 독립 당한게 맞다고 봄..

임시정부의 실책이라고 봐야겟지만..

댓글
Bullshit 2019.08.12. 18:20
 천사시체
그건 아님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을 할 의지가 있고 활동을 했기때문에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독립시키느냐 마느냐에 관한 논의가 있던거고 
먼저 한국독립을 주장한 미국을 설득시킬수있었음 그건 이승만이 잘했지 차후에 추하게 물러났지만 
댓글
그다지 2019.08.12. 19:01
나도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중들에겐 갑작스럽고 놀랄만 할듯
한국에서 자고 나란 어린 혹은 젊은 일본인들은 자기네들이 나고 자란 땅에서 왜 쫒겨나야할지도 모르고 쫒겨났다고 하니...

그러나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고 라는 식으로 폄하는 될수없는게 독립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독립 후 건국준비위원회등 어쨌든 표면상으로라도 대처가 되었다고 생각함.. 물론 미국과 소련이 들어와서 뒤집어놓고 국가가 갈라진건 좀 안타깝지만

역사는 넘나 어렵당 흐앙
댓글
에스덥 작성자 2019.08.12. 19:04
 그다지
그쵸 ㅜㅡㅜ 좋은 의견 감사합니당
댓글
안녕고래 2019.08.12. 20:29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 처럼 8월 15일에 '대한독립 만세!'라면서 태극기들고 흔드는 장면이 실제로는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네요-. 글 보다보니 생각났어요

댓글
리나군 2019.08.12. 20:56

조금 아쉬운 거죠.

우리 나름의 준비가 진행되어가고 있었고, 대중적인 큰 흐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해방이 되어버렸다는게 맞는 표현일듯 싶어요.
아예 준비가 없었다고 보기엔, 건준의 빠른 국내 정세 안정화 같은 것이 정말 준비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국내 진공작전도 준비중이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우리 힘으로 이루었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갑작스레 일본이 원자탄에 겁먹고 항복을 해버린 것이기에, 군주론에 따르자면 최악의 길로 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진정한 의미의 독립운동 중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저는. ㅎㅎ
댓글
ㄴㅇㄱ 2019.08.13. 14:56
조금 별론이지만 당시 미 국무부 자료를 보면 미국에 대한 한국과 임시정부의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가 꽤 자세하게 서술됩니다. 1942년 조소앙이 충칭의 미 영사와 접촉하기 전에는 미국이 임시정부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루스벨트는 한국의 독립을 지하는 편이었지만, 영국의 처칠 내각이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독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대해왔습니다. 임시정부의 노력이 없었다면 독립 조차 불가했을 수도 이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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