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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괴담/공포 군대실화소설) 집으로 돌아온 영웅 5

5일간의 진지공사 기간 동안, 우리 중대는 부대 관리 및 경계를 맡아 대대를 지키고 있었다.
텅 빈 대대 안에 남겨진 우리는, 자유를 얻은 듯 신나게 돌아다녔고, 5일간 부족한 간부들을 커버하려는 듯 상병장들의 권한 또한 조금씩 올라갔다.
 
8중대원들은 위병소, 탄약고, 분향소 근무를 번갈아가며 서기 시작했고, 7중대에서 하던 번개조 역할을 우리 중대가 맡게 됐다.
 
번개조란, 적이 급습을 했을 때, 5분 대기조보다 먼저 뛰쳐나가 정찰 및 1차 방어를 하며, 편한 복장에 몽둥이만 하나씩 들고 뛰어나가는 임무를 맡은 조를 말한다.
 
보통 느슨해지지 않게 훈련 상황으로 한 번씩 출동시키며, 이 때는 각자의 예능감을 뽐내고자 리모컨, 옷걸이, 구두주걱 등을 들고 가서 웃음을 주기도 하는 귀찮지만 재밌고 편한 직책이었다.
 
나는 진지공사 기간 동안 우리 소대원들과 함께 번개조 조장이었다. 물론, 올 사람도 없고, 나갈 사람도 없는 이 적막하고 독립된 대대에서, 5일간 우리가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일이등병들을 지휘하며 한적한 PX에서 짧고 달콤한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오랜만의 자유로움을 손에 쥔 채 웃고 떠들고 있을 때, 희미하게 코 끝을 맴돌았던 향 냄새는 자욱한 안개가 되어 우리를 휘감고 있었다.
 
진지공사 이틀 째 되던 새벽. 낮에 숨어서 열심히 잤던 탓인지, 나와 동기인 영찬이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틈타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해 보고자, 디스 플러스 한 대를 몰래 물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잠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적막감은 평상시 이 곳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분위기였고, 몰래 숨어 쌀쌀한 늦가을에 실내에서 피우는 담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맞은 편 이등병 생활관에서 커다란 비명 소리가 나기 전까진.
 
-으..으아아아!!!!!
-뭐야! 누구야!
 
다급하게 뛰어가는 불침번의 군화 소리와 생활관 안에서 들리는 우당탕 거리는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등은 우리가 환상적이라고 느꼈던 적막감을 한 순간에 걷어내 버렸고, 우리는 군대 밖으로 나간 듯 한 착각 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급히 샤워장 밖으로 나왔다.
 
-야. 뭐야. 구경하고 가자.
 
그 와중에 영찬이는 살짝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등병 생활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자신의 담배맛을 꺼뜨린 놈이 누군지 찾으려는 듯 영찬이는 성큼거리며 이등병 생활관 문으로 들어갔다.
 
이등병 생활관은 굉장히 어수선했다. 생활관 주인인 이등병들은 각자의 침상에서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채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딱 기상 나팔이 울렸을 때의 어리버리한 모습들 그대로였다. 생활관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놈만 빼면.
 
-야. 거기 널브러져 있는 놈. 가서 자라.
-쟤 우리 막내 아냐? 야 박재성! 뭐해 임마!
 
영찬이 널브러져 있는 재성을 보며 소리쳤다. 곧이어 뒤따라온 당직사관과 나도 재성에게 다가갔다. 성질 급한 영찬이 재성의 어깨를 잡았다.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여이름이거룩히여김을받으시오며나라가임하시오며뜻이하늘에서이루어진것같이땅에서도이루어지이다우리에게죄지은자를사하여준것같이우리죄를사하여주시옵고우리를시험에들지마시옵고다만악에서구하시옵소서...!!!
-으어 시발 깜짝이야!
 
영찬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늦은 새벽의 생활관에서 울려퍼지는, 높낮이 없이, 두려움에 젖은 재성의 주기도문은 모두의 등골에 서리를 내리게 하기 충분했고, 막사 안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주여...주여..!!!
 
재성이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젖혔다. 영찬은 재성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미쳤어!?
-주...주...전영찬 병장님?
 
한참을 허공을 보며 주를 찾던 재성이 영찬을 쳐다봤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답게 재성의 손에는 작은 십자가가 들려 있었다.
 
-그래 임마! 정신 차려!
-아직 임무수행을 완료한 줄 모릅니다...
 
재성이 영찬을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생활관은, 의아함과 공포심, 기타 등등의 부정적인 감각들로 서서히 물들어갔다.
 
-뭔 개소리야. 꿈 꿨냐?
-오른팔이 날아가면 왼팔로, 왼팔이 날아가면 이빨로... 그들은 아직 끝난 줄 모릅니다..
 
텅 빈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재성의 말투는 서서히 무미건조해져갔다.
재성의 눈이 도착하는 저 먼 곳. 그 곳에서부터 서서히 짙은 향 냄새가 퍼져들어왔다.
 

댓글 2

지효 2019.05.20. 23:51
어빠.. 다음글주세요.. 현기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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