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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괴담/공포 군대실화소설) 집으로 돌아온 영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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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근무 투입 하겠습니다.
-어 그래. 뭔 일 있으면 무전하고.
-넵. 강뱀도 고생하십쇼.
-근데 진짜 분향소 가기 무섭습니다.
-어 그래. 난 안 무서워.

나는 분향소로 투입되는 근무자들을 보내고 행정반으로 들어왔다.
시계는 밤 10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었고, 생활관 인원들은 이제 막 잠자리에 들어 하루의 고단함을 씻기 시작한 와중이었다.
나와 함께 당직을 서던 1소대장은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아껴놨던 무협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불 꺼진 복도에서는 희미한 코 고는 소리, 불침번들의 헛기침 소리만이 들려왔고, 이 커다란 정적에 반항하려는 듯 벽에 걸린 시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치익..- 당소 분향소 임무교대 후 현 시간부로 임무수행 하겠다고 알림.

분향소에 비치된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수신 양호.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고요하던 행정반을 질투하듯, 다시 무전기는 소리를 냈다.

-치익..- 당소 분향소 두개조 임무수행 중 아무 이상 없다고 알림.
-하이 나 이새끼들 무섭긴 오질라게 무섭나보네.

1소대장이 휴대폰에서 눈을 돌리며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무전기에 숨을 넣었다.

-치익- 아 분향소 인원들 수신 양호하다고 알림.
-소대장님. 얘네 이러다 귀신봤다고 오줌 지리는거 아님까?
-야. 분향소 문도 잠궈놨고 불도 다 꺼놨는데 뭐가 무서워. 남자새끼들이 겁은 아주그냥.

나와 소대장은 키득거리며 담배를 물고 일어났다.
행정반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투둑 거리는 빗소리가 정적을 밀쳐내고 있었다.

-소대장님. 밖에 비옵니다.
-에이 뭔. 애들 우의 입으라그래.

나는 내심 당직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무전기를 들었다.

-치익- 아. 근무자들 우의 착용할 수 있도록.
-치익..- 위병소 수신 양호.
-치익..- 분향소 우의가 모자라다고 알림.

소대장과 나는 응?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근무 투입 시 우의를 가져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간혹 짬 먹은 병사들 중에 귀찮다고 우의주머니를 놓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무전을 때리다니?

-...야 당직.
-병장강지우?
-애들 우의 챙긴거 확인 안했어?
-...주머니 차고 나간 건 다 확인했는데, 한 놈이 가라로 차고 갔나봅니다.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소대장을 바라봤다. 분명 두 놈 다 우의주머니를 달고 가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1소대장은 ‘에휴’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를 마저 물었고, 나는 대충 눈치를 보며 시선을 돌렸다. 시계는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근데 교대한 애들 왜 안옵니까?
-그러게. 진작 올라왔어야 됐는데, 짱박혀서 담배라도 피나 보지.

화제를 돌리려고 한 말에 소대장은 건성으로 응수했고, 내 궁금증을 해소해 주듯 불침번이 행정반으로 들어왔다.

-근무교대자들 복귀합니다.

이윽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분향소 근무자들 2명이 들어왔다.

-이기자. 근무복귀했습니다.
-어 그래. 고생했다. 위병소는?
-밑에서 담배피고 있습니다.

-야. 왜 이렇게 복귀가 늦었어?

소대장이 근무자들을 보며 말했다.

-아. 당직사령님이 순찰돌고 있어서 저희 다음 근무자한테 탄 배분이 늦었습니다.
-어? 그럼 너희는?
-저희 방금 교대하고 탄 반납하고 바로 올라왔습니다.

나와 소대장의 눈은 동시에 무전기를 향했다.
얘네가 방금 교대했다면, 지금까지 무전을 하던 놈들은 누구란 말인가?

-야. 너네 근무교대했다고 무전 안했어?
-잘못들었습니다?
-무슨 무전 말씀임까? 저희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나는 당황한 채로 소대장을 쳐다봤지만, 소대장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구라 치지 마 이 새끼들아. 니네 우의 부족하다고 무전...

나와 소대장은 눈이 커진 채로 근무자들을 쳐다봤다. 근무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우의를 입은 채로 우리를 바라봤다.

-뭐야 씨발. 어떻게 된 거야? 강지우 너도 무전 들었잖아.
-그렇습니다. 분명 우의 부족하다고...

-치익- 당소 분향소 현 시간부로 근무교대 후 근무투입했다고 알림.

무전기의 익숙한 전자음이 당황과 불신을 담은 우리 사이로 퍼져나갔다.
나와 소대장은 얼어붙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분향소 근무자들은 눈치를 살피다 경례를 하고 행정반을 나갔고, 위병소 근무자들이 들어왔다.

-이기자. 위병소 근무 복귀했슴다.

나와 소대장은 멍한 상태로 고개만 까딱거렸고, 위병소 근무자들은 익숙하게 총기를 내려놓고 복귀 준비를 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소대장의 중얼거림을 뒤로 한 채, 나는 무전기를 쳐다봤다. 그냥 의사소통을 하는 도구였던 무전기는, 점점 내게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위병소 근무자들은 눈치를 살짝 살피고는, 조용히 행정반 밖으로 나갔다.

-아 참. 강뱀.

행정반 밖으로 나가려던 후임 한 놈이 고개를 돌려 나를 불렀다.

-아까 왜 자꾸 무전기에 대고 혼잣말 했슴까? 분향소 애들 무섭게?

장난스럽게 이야기하고 나가는 근무자들의 등을 보며, 나와 소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벅 저벅 하는 발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우리를 휘감았다.

-치익..- 당소 분향소 근무교대 후 다시 2개조 근무하겠다고 알림.

희미한 향 냄새와 함께, 낮은 목소리의 전자음이 행정반 전체를 가득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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