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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리뷰/리뷰 하나 된 팀에서부터 시작하는 ‘서울의 봄’ - 10.29 수원FC:서울전 직관 후기 (2편)[발롱도르~]

이 글에는 1편이 있습니다. 

https://www.flayus.com/112253402

 

 

https://blog.naver.com/goldstar83_17/223253952892

이 글은 제 블로그 '럭금의 국축국축' 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쑥스럽고 죄송하지만 지금껏 축구를 보며 생각한 것들을 모아둔 이곳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후반전 : ‘수비는 버린다’, 난타전 끝에 이기는 팀으로 돌아간 서울

 후반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은 개선됐다고 하기 힘든 모습을 보였다. 전반부터 시작된 탄식도 늘어만 갔다. 수원FC는 가능성이 희박해도 9위를 위해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게 뒤편에 영원한 4번을 업었기에 잘해야 했던 서울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평소 수원FC의 압박 강도가 타 팀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32라운드 맞대결부터는 달라졌다. 가을이 와도 강등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수원FC는 기조를 바꿨고 김선민을 필두로 한 수비와 압박의 강도가 상승했다. 그 결과가 서울의 파이널B행이었다. 전반과 후반 초반은 팀이 우리를 주저앉게 한 원인을 극복하지도 못하고 대응하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분명 강등권이 아닌데 이대로면 내년에도 답이 없다는 위기감이 스쳤다. 자꾸 소리를 지르고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주변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를 왜 보러 가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을 전북전 직후나 이 글의 초입이나 서울팬답지 않게 너무 자주 썼다. 그 이야기가 내 옆자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더구나 후반 시작과 함께 로페즈에게 좌측면 돌파를 허용한 뒤 백종범이 다이빙 세이브로 달랜 유효슈팅을 내주는 바람에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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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라운드처럼 상대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며 주저앉던 팀을 구한 건 이번에도 기성용이었다. 다만 방식이 더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때도 페널티박스 밖에서 공을 때려 동점골을 만들며 멋있는 장면을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하프라인 밖에서 찬 공이 골문 안쪽에 들어가서야 멈춘 것이다. 기성용은 2021년 초처럼 나상호가 자신의 롱패스를 받아 때리길 원했겠지만(그러고 보니 이 경기도 수원FC전이었다), 공은 나상호의 머리도 노동건의 글러브도 거치지 않고 골 그물을 때렸다. 사람들도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종합운동장인데도 시야가 트랙 때문에 멀어 상황 이해에 몇 초가 걸리는 이른바 시차가 느껴지지 않는 뜨거운 골이었다. 반 시즌을 내리 계속된 부진도, 파이널B 확정도 살면서 과연 몇 번을 더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골 앞에서는 분노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 소리치는 사람들, 방방 뛰는 사람들이 원정석을 덮었다. 힐난과 불만, 체념 같은 각자의 모습이 대지를 가르는 슛과 함께 다시 단단히 묶였다.

 

 

 평생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장면을 보고 감화됐지만 그 장면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양 팀은 공격에선 번뜩이고 수비에선 실수를 연발하며 전반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화력전을 연출했다. 말이 안 되는 득점에 성공한 서울은 힘을 얻었고 위기감을 느낀 수원FC도 앞에서 싸우기 위해 노력했다. 양 팀은 웅크리는 대신 치고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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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FC가 기성용의 골로 킥오프한 지 3분이 되지 않아 서울은 경기를 뒤집었다. 상대의 오른쪽 측면을 파고든 윌리안이 수비수 4명을 가을 낙엽마냥 스러지게 한 후 역전골을 기록했다. 윌리안이 사극에 칼 차고 등장하는 무사도 아니고 축구가 격투도 아닌데, 윌리안이 공을 잡으면 자꾸 상대 수비들이 무너져내린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28R 울산전도 그랬다. 환상적인 골을 목도한 후 불안해했던 사람들이 어깨를 걸고 같은 외침으로 뭉친 것도 똑같았다. 그때는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 후 이 팀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강팀을 만나서, 지금은 목표를 잃은 것 같아서. 여러 이유로 우리는 불안했지만 경기장에서 몇 명의 수비수를 종잇장으로 만드는 플레이를 선보이는 것만큼 의지를 증명하는 일이 없고, 그걸 직접 보는 것만큼 신뢰를 되찾기 좋은 일이 없다.

 

 물론 서울의 수비가 불안하단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원더골을 본 후 이대로 경기가 끝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지난해 여름 커다란 아픔을 준 이승우가 교체투입됐고, 역시나 현재 수원FC의 아이콘은 들어오고 얼마 안 돼 동점골을 신고했다. 경기의 2/3이 지나갔지만 어떻게 끝날지는 점점 더 알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만한 일이 있다면 로페즈와 이승우의 골이 모두 막는 게 거의 불가능한 골대 바로 앞에서의 슛이어서 미련을 빨리 버릴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선제골을 허용할 때까지만 해도 싫은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던 S석의 우리가 동점골부터는 힐난하기보다는 현장팀의 지휘에 맞춰 박수와 함성을 보태는 걸 선택했다는 것. 김진규 감독대행은 요즘 동기부여는 25일 월급날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자주 꺼내지만, 사실 우리가 제일 잘 안다. 죄책감이 들고 허망할 때 평소와 같거나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피파에서도 보기 어려운 경이로운 골 두 개로 역전에 성공했다.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믿는 눈치였다. 원정석은 분노 대신 신뢰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전 감독의 서포터를 향한 난해한 행동과 갑작스러운 사퇴, 파이널B 확정 등 여러 이유로 찢어졌던 우리가 다시 손을 잡고 우리가 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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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들의 뜨거움에 우리가 응답한 걸 알아챈 걸까. 필드 위에선 동점골 허용 후 10분이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골이 터졌다. 그간 득점은커녕 움직임까지 답답해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던 비욘 존슨이 골대에 맞고 나온 김신진의 슈팅을 포스트 대신 네트로 되돌려줬다. 실점했다고 맥이 빠진 채 뛰지 않았고, 다시 리드를 가져가기 위해 끝없이 공을 앞쪽으로 보내고 경합을 이기려고 뛰어다녔다. 납득했다. 선수들이 비록 여러 나쁜 조건이 겹쳐 원하던 곳에 올라가진 못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이해했다. 우리를 포함한 누군가는 남은 시즌을 뛸 동기가 없는데 뭘 하겠냐고 좌절하기도 했고 승패는 의미가 없으니 안 쓰던 선수를 쓰자며 포기하기도 했다. 4년 동안 응답을 못 받고 기도만 하면 그런 반응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큰 허무를 겪었을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이날 경기의 양상으로 알 수 있었다. 안정환이 2018년 독일을 잡던 때 욕먹기 전에 잘하지!” 라는 말을 한 게 생각나기도 했지만 우리가 원하던 승패에 우리만큼, 그리고 우리보다 간절한 선수들의 모습을 이날 경기에선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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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도에 대한 신뢰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신뢰로 바뀌었다. 역전과 추가득점에 성공했으니 상대도 힘이 빠질 것 같았고, 웬만하면 이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믿음이 90분이 넘어 로페즈에게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준 뒤에도 전혀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이 10초 정도만 침묵하다 다시 북을 치고 서울을 외쳤기에 그게 나만의 감정이었다곤 말할 수 없다. 비욘 존슨의 헤더가 골문 앞에 있던 김경민을 가리켰다. 노동건과 엉켰음에도 떨어진 공의 위치를 바로 찾아낸 김경민은 KO승을 직감한 듯 공을 왼발로 찍어버렸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트랙 너머 경기를 뛰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 건지, 서울은 다음 킥오프 후 첫 공격에서 바로 끝내기 골을 뽑아냈다. 원정석에 있던 거의 모든 관중들이 과열을 넘어 폭발하는 듯한 감정을 뜀박질과 주먹질, 그날의 다른 어느 시간보다 커다란 목소리로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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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두 팔을 치켜세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길 것 같았으니까. 역전부터 세 번째 골까지, 그날만큼은 단 한 번도 비관한 적이 없던 선수들이라면 이렇게 할 줄 알았으니까. 예상했던 일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연기하기보다는 한 시즌을 그르쳤다는 절망을 이겨내고 그날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만세만 펼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는 벅찬 마음이 들이닥쳤다. 순위표가 맘대로 안 됐을 뿐, 우린 포기를 넘어섰고 조각난 서로의 마음 위에 빛나는 믿음을 덧칠해 다시 하나가 되었다. 지지 않으려 하는 마음을 선수단과 팬들이 모두 되찾았다는 걸 후반전 전체가 말해줬다. 파이널B에 갇힌 건 끝이 아니다. 당연히 괴롭겠지만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다음 해엔 더욱 엿 같은 일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그걸 선수들도 잘 알고 뛴 결과가 수원FC전의 과정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서울극장, 우리 팀이 수놓은 전성기의 이름이고 상암을 쓰는 팀이 가진 위닝 멘탈리티의 다른 말이다. 그걸 맨눈으로 다시 본 게 이번 시즌의 실패를 넘어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부추겼다. 수원종합운동장 남쪽에 모인 사람들은 네 번째 골과 함께 더 이상 남의 강등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제 시즌은 끝났다고, 안 나오던 선수를 쓰라고 하던 이야기도 사라졌다. 목표가 없대도 1승이 목표여야 한다는 자세를, 우리가 남은 시즌이라도 이겨내야 다음으로 갈 이유가 생긴다는 마음을 목소리로 손뼉으로 뜨겁게 함께했다. 잠깐 손을 놓았던 선수단과 팬들이 다시 손을 잡아 우리가 됐다.

 

경기 후 : 다시 하나로 뭉친 우리 앞에 놓인 서울의 봄

 워낙 추가시간이 길었기에 두 곡을 더 불렀다. 플래시를 킨 채였다. 마지막 골이 들어간 뒤부터는 이길 줄 알았다는 나의 마음이 다른 모든 팬들에게도 전이된 느낌이었다. 그날 경기에선 절대 안심할 수 없는 한 골 차였지만 사람들은 끝났다는 듯 불을 밝혔고, 정말 끝났다. 우리가 이길 거라는 믿음, 선수들이 우리처럼 절실하다면 상대가 아무리 남은 힘을 쥐어짜도 더는 승부를 바꿀 수 없다는 확신 아래 각자의 이유로 절망하던 서울 팬들은 하나로 되돌아가 희망을 노래했다.

 

 종료휘슬과 함께 전반 4분의 박수가 끝나고 불렀던 봄을 다시 목소리로 앞에 가져왔다. 더는 물러서지 말자고. 우리는 함께 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런 팀이라면 다음 해엔 노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해엔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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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UREVER 남춘

 그날 경기에는 평소의 서포터 혹은 선수 응원 걸개와 함께 이 문구가 걸려 있었다. 우린 진작 올라갔어야 했고, 하늘에 떳떳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4년을 그렇게 하지 못했다. 팀의 4번을 떠나보내고 네 해 동안 우리는 위안이 될 만한 성적표를 낸 적이 없다. 하다못해 기일에서 가장 가까운 경기마다 이긴 적도 없었다. 선수들도 그런 상황의 죄책감을, 걸개가 걸렸기에 그날의 압박감을 가지고 뛰었을 것이다. 90분 동안 당장에라도 찾아가 말을 걸고 쓰다듬고 싶었을 걸개를 향해 선수단은 승리라는 최소한의 위안을, 떠난 후 최초의 위안을 갖고 찾아왔다. 한 팬분께 2020년의 4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건네받고 승리사진을 그곳에서 따로 찍었다.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를 4년 만에 처음으로 이겼다. 전반 4분 박수를 쳤고 4골로 첫 번째 승리를 확정했다. 우리의 믿음을 둘러싼 그 수많은 4가 우리가 하늘로 보낸 건지, 하늘이 내려준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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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흩어졌던 우리가 가장 중요한 날 다시 하나가 돼 봄을 맞이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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